Sunday, July 4, 2010

컴퓨터 고장에 대처하는 자세

블로그 포스팅을 구상하던 중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컴퓨터에 전원을 넣으면 화면이 뜨기도 전에 재부팅이 되어버리는 현상이었다. 의심 가는 순서대로 부품들을 점검하였으나 원인을 찾지 못해 좌절하던 순간. 설마하는 생각에 컴퓨터 케이스와 메인보드를 연결해주는 스위치 단자들을 확인해보았고 범인은 리셋 단자 불량이었다. 원칙대로 접근했다면 금방 해결하였을 일을 감으로 하려다 먼 길을 돌아갔다. 매사에 있어 가장 기본을 잊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이 경험담을 첫 글로 띄운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그리스를 2:0으로 이겨버린 그 날. 기분 좋게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는데 BIOS 화면을 보기도 전에 픽 하고 전원이 나가 버린다. 놀란 것도 잠시. 컴퓨터가 저절로 다시 켜지는듯 하더니 힘없이 다시 꺼지고 이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말로만 듣던 '무한 재부팅' 현상. 하지만 흔히 말하는 '무한 재부팅'은 윈도우 로딩 중 블루스크린이 발생해서 일어나는데 반해 내 컴퓨터의 경우 운영체제는 커녕 POST를 보지도 못하고 3초 정도만에 재부팅이 되고 있었다.

조금 귀찮더라도 부품별로 문제를 확인해보면 금방 원인이 나올거라 생각했기에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USB, 하드디스크 등의 주변 기기들을 모두 분리하고 부팅을 시도해본 결과 여전히 같은 증상. 비교적 분리하기 쉬운 RAM과 그래픽카드를 교체해 보았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고 결국 파워를 드러냈다. 파워를 집에 있는 다른 컴퓨터에 연결해보았더니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나에게 가장 가능성있어 보이는 시나리오는 메인보드의 고장이었다. 일이 생각보다 커지고 있음을 느끼며 모든 부품들을 분해했고 다음날 메인보드를 들고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메인보드 서비스센터 직원분은 한참동안 무언가를 자세히 살피시더니 CPU 소켓핀 하나가 부러져 나간 것을 발견해내셨다. 메인보드 소켓에 CPU를 장착할때의 부주의이거나 이번 일로 다시 분해하면서 잘못 건드린것이 아닌가 싶었다. 덕분에 CPU 소켓핀이 생각보다 연약하고 조심히 다루어야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소비자 과실로 처리되어 유상교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CPU 소켓핀이 하나 부족하다고 해서 위와 같은 '무한 재부팅'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짧은 지식으로는 답을 내릴 수 없었고 결론은 집에가서 테스트 해보자였다.

수리받아온 메인보드로 열심히 컴퓨터를 조립한뒤 전원을 넣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전과 완전히 동일한 문제가 계속되었다. 메인보드는 분명히 서비스센터에서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CPU. 물론 CPU도 충분히 불량 및 고장이 있는 부품이지만 여태 나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한번도 직접 경험한 적은 없었다.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다시 분해. 이번에는 CPU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CPU 서비스센터 직원분은 내가 가져온 CPU를 테스트 해보신다며 작업실쪽으로 들어가셨고 얼마 있지 않아 새 제품을 들고 나오셨다. CPU에 문제가 있는것 같다고. 약간 충격이었다. 사실 '무한 재부팅' 현상이 CPU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 재부팅' 현상 때문에 CPU가 망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새 CPU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고 상황 종료를 거의 확신하며 컴퓨터를 케이스에 완전히 조립해 넣어버렸다. 그러나 전원 버튼을 누르고 한치의 변화도 없는 '무한 재부팅'을 다시 겪기 까지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막막했다. 더이상 의심해 볼 부품조차 없었다. 멍하니 앉아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 보는데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애초부터 케이스의 전원 버튼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케이스와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스위치 단자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설마하는 생각으로 각 단자들을 하나씩 분리하며 전원을 넣어보았다. 그리고 리셋 단자를 분리하고 전원을 넣었을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부팅되는 나의 컴퓨터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순간 그냥 머릿속이 깨끗해진것 같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이렇게 단순한 부품 확인을 지나치는 바람에 컴퓨터 조립을 몇번을 했는지 모른다.

정리하자면 내 컴퓨터가 전원이 들어온 다음 아무 화면도 띄우지 못하고 금새 재부팅되는 현상의 원인은 리셋 단자 불량이었다. 이런 스위치 단자의 불량이 언제나 '무한 재부팅'의 원인이라는 법은 없겠지만 간단히 확인해 볼 수 있는 부분이므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다른 부품들을 의심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테스트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케이스와 연결되는 스위치 단자들을 모두 제거한 다음 메인보드에서 전원 및 리셋 버튼을 따로 제공하는 경우 해당 버튼으로 정상 부팅이 되는지 확인하고 별도의 버튼이 없는 경우 기존 전원 단자가 연결되는 두 핀을 드라이버 등으로 잠시 쇼트시켜서 부팅시켜보면 된다.

모처럼 컴퓨터가 고장이나서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아직도 이상한 점은 각 서비스센터에서 메인보드와 CPU 모두 문제가 있어 교환했는데 정작 원인은 리셋 단자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전에 나는 불량 CPU에 소켓핀 마저 하나 없는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컴퓨팅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1 comment:

  1. ㅎ ㅎ 정말 먼 길을 돌고 많은 비용을 들여서 원인을 '엉뚱한'데서 찾으셨네요. 귀한 경험 저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쓰일 수 있게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ReplyDelete